국회 보좌진의 능력을 인정받기 위해서는 정무적인 감각을 키우는 것이 필요합니다. 하지만 그 중요성에도 불구하고 정무적인 감각을 기른다는 게 쉽지 않은 현실입니다. 배울 곳도, 가르쳐줄 사람도, 공부할 방법도 정해진 것이 없죠.

 

국회 보좌진으로 당 지도부를 경험하고 정치부 기자도 역임했던 박용규 님으로부터 정무감각을 키우는 방법을 소개합니다.

 

👨‍🏫필자 소개: 박용규

  • 정치학 박사 과정
  • 전)국회 보좌관
  • 전)머니투데이 정치부 기자

 

📝기고문 주제

  • 보좌진의 정무적인 감각을 키우는 방법
  • 현안에 대한 정무적인 분석을 통한 정무적인 감각 키우기

 


 

오래된 습관을 점검하라!

 

정무적 일하기의 세 번째 이야기는 ‘정무적 글쓰기’입니다. 글쓰기는 국회의원실이 아니더라도 모든 일에 기본입니다. 본인이 속해있는 조직이 원하는 수준 이상의 글쓰기가 된다면, 업무의 부담이 크게 덜 뿐만 아니라 ‘일잘러’로 인정 받기도 쉽습니다.

 

말이나 글로 인한 사건 사고는 국회의원들에게 상존하는 위협입니다. 이를 줄이는 것은 보좌진들의 중요한 일입니다. 말은 예측불가능한 상황이나 부지불식간의 말습관이 빚어낸 사고의 가능성이 높습니다. 반면, 글로 인한 사고는 사전에 충분히 살펴볼 수 있다는 측면에서 차이가 있을 것이고 나아가 보좌진들에게는 치명적일 수도 있습니다.

 

국회의원실의 글쓰기는 기본적으로 외부에 제공되고, 긍정적인 언론 보도를 염두한 글입니다. 다르게 생각해보면, 보도되지 않을 법한 글을 쓴다는 것은 리소스 낭비일 수도 있다는 것입니다. 여기서 국회의원과 보좌진들의 갈등은 자주 생깁니다. 예를 들면, SNS에 정국상황에 대한 입장글을 게시하는 것을 살펴보면, 대부분 언론보도는 되지 않을 것입니다. 때에 따라서는 일부 내용만이 언론에 게시되면서 전체 맥락과 다르게 악용될 수도 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지자자들의 여론 형성을 위해서 자주, 반드시 써야 한다는 국회의원도 적잖이 있습니다.

 

 

언론의 특성상 국회의원의 글이 대서특필 되는 경우는 잘 써서가 아니라 잘 못 썼기 때문인 경우가 절대적으로 많습니다.

 

언론의 특성상 국회의원의 글이 대서특필 되는 경우는 잘 써서가 아니라 잘 못 썼기 때문인 경우가 절대적으로 많습니다. 그래서 보좌진의 글쓰기 태도는 논란에 적극적 또는 공격적이기보다는 소극적, 방어적인 자세를 가질 가능성이 높습니다. 그렇다고 늘 소극적이고 방어적으로 쓸 수는 없습니다. 국회의원의 성향, 정국 상황이 공세냐 수세냐 혹은, 이슈가 부정적이냐 긍정이냐에 따라 때로는 적극적이고 강한 어조의 글이 필요할 수도 있습니다. 어떤 스탠스가 적절한지에 대한 고민은 정무적 글쓰기에서 중요하게 살펴봐야 할 지점입니다.

 

한편, 정무적 글쓰기에 반드시 살펴봐야 하는 것은 그 이슈에 국회의원이 끼어도 되는건지입니다. 주목받는 이슈라고 해서 고민없이 숟가락 얹었다가 자칫 큰 화를 불러올 수도 있습니다. 예를 들어 부동산 다주택자 이슈가 불거졌는데, 다주택 국회의원이 관련 글을 SNS에 게시하는 것은 한번 고민해봐야 할 것입니다. 사실 섣부른 참전은 절대적으로 지양해야 합니다. 세상의 모든 이슈가 국회의 것이라고 해서 모든 국회의원들이 다 한마디씩 해야 하는 것은 아닙니다. 자신이 없는 주제라면 과감히 눈과 귀만 열고 여론을 주시하는 것도 필요합니다. 그래서 쓰지 않는 것도 정무적 글쓰기에서 중요합니다.

 

 

‘앞뒤를 읽어보면 그런 맥락이 아니다’라고 아무리 주장해봐도 엎질러진 물이 될 수 있는 것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전선에 참여해야 한다면 이 때의 글쓰기는 평소보다 휠씬 더 신중해야 할 것입니다. 단정적이고 부정적인 표현은 자제하고, 무엇보다도 뒤치기 당할 여지는 없는지를 심사숙고 해야 합니다. 정무적 글쓰기는 맥락으로 쓰는게 아니라, 문장, 문단 그 자체로 의미를 명확하게 전달해야 합니다. ‘앞뒤를 읽어보면 그런 맥락이 아니다’라고 아무리 주장해봐도 엎질러진 물이 될 수 있는 것입니다.

 

정무적 글쓰기의 실제에서 고민해야 할 몇 가지를 살펴보겠습니다. 첫 번째, 단어를 잘 골라야 합니다. 단어를 잘 고른다는 것은 두 가지 맥락입니다. 하나는 정확한 의미를 가지는 단어를 고른다는 것이고, 다른 하나는 단어가 가지는 의미를 정치적으로 따져봐야 한다는 것입니다. 예를 들어, 탈당 선언문에서 제가 가장 유심히 살펴보는 것은 ‘잠시’라는 단어 또는 유보적인 입장이 있는지 여부입니다. ‘잠시 당을 떠납니다’와 ‘당을 떠납니다’는 정치적으로는 제법 큰 차이가 있습니다. 당연히 정치인들의 언어는 여지를 남기는 것이 기본이니, ‘잠시’라는 말을 넣고 싶을 것입니다. ‘내 의지가 아니다.’, ‘반드시 돌아올 것’이라는 의지의 발현일 것입니다. 다른 한편, 정치적 깔끔함이라는 측면에서 본다면, 그닥 추천하지 않습니다. 당에 부담을 주기 싫다는 것이 탈당의 이유인데, 굳이 돌아오겠다는 것을 보는 사람들은 탐닥치 않을 것입니다. 굳이 쓰지 않았다 해서 복당의 의지가 없다고 읽는 독자들은 많지 않습니다. 반면 잠시라는 표현을 굳이 써야 한다면, 정치적으로 어떤 의미가 있을지 살펴봐야 한다는 것입니다.

 

단정적인 표현은 정무적 글쓰기에서 가장 논란이 되는 부분입니다. 단정적인 글은 힘을 가지는 반면, 뒤가 없습니다. 늘 후일을 염두하고, 도모해야 하는 정치인들에게 확정적이거나 단정적인 글은 본능적으로 고민이 듭니다. 물론, 과감한 표현이 정국 상황을 고조시키기 위한 전략일 수도 있지만, 이는 특별히 몇몇 정치인들에게만 해당 될 뿐 대부분의 국회의원들에게 크게 상관이 없을 것입니다. 단호한 의사전달이 본인들의 정치적 위기를 대응하는 최우선이 방법이라고 판단할 수도 있습니다. 중요한 것은 이를 심사숙고 했는지 여부일 것입니다.

 

 

‘잠시 당을 떠납니다’와 ‘당을 떠납니다’는 정치적으로는 제법 큰 차이가 있습니다.

 

비유와 은유, 고사성어, 사례 등 글의 맛을 살려주는 것들은 양날의 검입니다. 독자들, 특히 언론의 주목도를 끌 수도 있지만, 자칫 부메랑이 되어서 돌아올 수도 있습니다. 반대로 말한다면, 비유와 은유에 대한 지식이 많다면 좋다는 뜻이 되기도 합니다. 좋은 비유는 글의 품격을 높여주지만, 비유의 맥락이 어긋나면 글 전체가 오독되고 사실상 사태를 더욱 악활 시킬 수도 있습니다.

 

‘숫자’도 중요합니다. 장님 코끼리 다리만지는 격이 될 수도 있지만, 글에 필요한 숫자를 엄선하는 것도 정무적으로 중요합니다. 예를 들어, 다른 결론을 내린 두 개의 여론조사가 있습니다. 이런 경우의 정무적 판단이 중요합니다. 평론가의 글이라면, 둘 다에 대한 분석이 필요하겠지만, 정치인의 글에서는 필요한 하나만 드러나면 족합니다. 물론 둘 다 알고 있다는 전제에서 말입니다. 즉, 글에서는 유리한 것만 참고하되, 혹여나 후속 토론이 필요하다면, 왜 나머지 데이터를 쓰지 않았는지 설명할 수 있도록 준비하는 것입니다.

 

정무적 글쓰기는 정적에게는 아프지만 할 말 없게 만드는 것, 지지자들에게는 논리정연한 글, 대다수의 시민들에게는 ‘그렇지 이런 글이 국회의원의 글이지’라는 느낌이 들게 만드는 글을 쓰는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정치판에 오래 있어 부지불식간에 넘어갔던 글쓰기의 습관을 이번 기회에 다시 한번 점검 해보시는 것도 권해 드립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