셀럽에서는 국회 보좌진 출신으로 사회에서 다양한 활동을 하고 있는 분들의 인터뷰를 시리즈로 싣고자 합니다. 평생 직업이 현실적으로 어려운 국회 보좌진의 특성상 항상 다음 커리어는 고려를 해두는 것이 현명할 텐데요. '선출직 의원'에서, '사업가'까지 다양한 직종에서 활약하고 있는 보좌진 출신 분들의 이야기를 담아보도록 하겠습니다.

 

두 번째 인물은, 현재 기업의 대관팀에서 근무하고 있는 OOO 님입니다.

 

  • OOO 익명 요청
  • 국회 근무 약 10년 (현 여당(국민의힘) 쪽 보좌진 출신)
  • 현 모기업 대관팀

 


 

간략한 소개(국회 보좌진이 된 이유, 국회에서 했던 업무 등 포함해서)

 

선후배님들 안녕하세요. 저는 여당 쪽 의원실에서 10여 년간 보좌진으로 일하다 현재는 기업의 대관업무를 맡고 있습니다. 인턴부터 5급 선임비서관까지 하나하나 겪으면서 여러분과 크게 다르지 않는 걱정과 고민을 헤쳐 나왔고요, 의원실 옮기면서 상임위도 다양하게 해보고, 의원님들의 당직들도 두루두루 겪어봤다는 것을 무기로 지금 직장에서 국회와 관련된 일을 아는 척 좀 하면서 하루하루 살고 있습니다.

 

지금은 우리나라 근로기준법의 위대함을 느끼며 비교적(회관과 비교해) 편안한 직장 생활을 하고 있고, 국정감사에 몸과 마음이 많이 지쳐있을 독자 여러분들을 만나기에 현재에 더 감사하며 살고 있습니다.(놀리는 거 아니고요, 군 전역한 예비역이 현역 바라보는 심정 정도로 이해해 주세요)

 

왜 국회에 들어왔냐고 물으시면, 기업 대관이 되기 위해서 간 것은 절대 아니고요. 뜨거운 피와 열정을 가진 독자님들과 크게 다르지 않은 이유로 힘들어도 보람을 느끼면서 회관 생활을 버텼던 한 사람이었습니다. 지금은 여러분과 멀지 않은 곳에서 매일같이 마주치는 기업 대관 중 한 명이고, 잘난 것도 없어서 편하게 이야기하고 싶어 제 신상에 대해서는 밝히지 않기로 한 점 양해 부탁드려요.

 

 

보좌진에서 대관이 된 계기

 

일단.. 회관이 너무 힘들었어요. 밖에서 돈도 많이 준다고 하고, 일도 먼저 나가신 분들이 회관보다 힘들 수가 없다는 말을 수없이 들었기에 선택하게 되었습니다.

 

사실 보좌진이 갈 수 있는 곳이 대관 말고는 거의 없기도 해요. 변호사 자격증을 가진 분들도 대관업무와 거의 비슷하게 일하는데 잘난 것도 없고, 할 수 있는 것도 없는 입장에서 선택의 여지는 별로 없었습니다. 물론, 계속 의원실에 있을 수 있다는 보장만 있다면 좀 더 있으려 했을 것 같아요. 수도권 출신이라 지역 향후회 모임도 없고, 그렇다고 날고 기는 학교를 나온 것도 아니어서 밀고 끌어주는 사람도 없고, 의석이 지금보다 더 줄어들 것 같은데 과연 생존할 수 있을까를 심각하게 고민하던 상황에 같은 의원실에서 일했던 형님이 끌어주시니 그걸 거절할 이유가 없었죠.

 

한 치 앞이 안 보이는 정쟁 상황에서 의원들에게 갑질당해 쫓겨난 이야기를 들으면 참 잘 나왔구나 싶으면서도, 친하게 지냈던 선후배들이 쟁쟁한 곳에서 멋지게 활약하는 모습을 보면 부럽기도 합니다. 사람이란 게 항상 자기가 가보지 못했던 길을 부러워하잖아요? 뭐.. 딱 그 수준이지만 지금은 국정감사 기간이니 독자 여러분이 부럽기보단 안쓰럽다는 마음을 더 갖고 있습니다.

 

 

대관업무 장단점

 

독자 여러분이 매일 마주치는 사람들의 모습이니 뭐 대충의 장단점은 이미 다 알고 계실 거라 생각이 드는데요. 머릿속에 떠오르는 포인트 장점으로는 직업적 안정성, 단점으로는 을이 된다는 것이 맞습니다.

 

누구나 자기가 다녀온 군대가 제일 힘들었고, 자기가 하고 있는 일이 제일 어렵고 힘들죠. 내 주변엔 다 빌런들만 있다고 생각하고. 뭐, 그게 인간의 본능이니까요. 하지만 제가 양쪽을 다 겪어본 사람으로서 이야기하자면 세상에 보좌진만큼 힘든 직장은 없어 보입니다.(물론 이 글을 읽으시는 분들이 각 방에 계신 빌런들이 아니라는 전제하에)

 

실제 기업으로 오기 전엔, 의원실 한두 명이 하는 일을 기업에선 팀끼리 한다는 소문까지 들었지만 그건 정말 케바케인 것 같아요. 어느 정도 규모 있고, 이름있고, 전망 있는 기업에 계신 분들은 그래도 다 자기 몫을 하더라고요. 그 사람들도 나름 쟁쟁한 사람들인데 동료들에게 피해를 주지 않으면서 자기 밥값 하는 건 어디든 쉽지 않은 일입니다.

 

대관업무가 매일 회사의 일반 업무와 상관없이 국회에 앉아있다가 선후배들 밥 사주고 간식 사주는 게 전부라고 생각하면 정말 착각이고요. 기업의 필요에 따라 의원실처럼 전천후로 일하는 사내 전문가 역할을 한다고 이해하시면 좋을 것 같아요. 국정감사에서 증인 빼는 게 전부가 아니고요. 각 사업 부서의 민원성 업무를 처리하기도 하고 회사에 유리한 법안을 만들기도 하고, 정가에 떠도는 정보들을 취합해 회사와 관련된 정보로 가공하여 경영자의 판단을 돕는 업무까지 합니다. 의원실에서 보좌진들이 다 같은 업무를 하는 것이 아닌 것처럼 회사에서도 기본적으로 개인 역량에 따라 업무범위와 깊이는 다 다릅니다. 어딜 가나 잘하는 사람이 똑같이 잘한다는 진리는 변하지 않고, 일도 잘하는 사람이 잘 찾아서 하는 건 변함없습니다.

 

 

대관의 장래, 커리어 패스

 

저도 그게 항상 걱정이고 고민입니다. 10대, 20대, 30대만 고민하는 거 아니고요. 40대가 되어도, 안정적인 회사에 들어가도 같은 고민은 항상 합니다. 회관에서 일하다가 배지 다신 분들이 롤 모델이신 분들 많을 텐데, 그분들도 배지를 달고도 앞으로 어떻게 해야 할지 고민하시더라고요. 자기가 처한 위치에서 죽을 때까지 다 다른 선택과 고민을 하는 것이니, 정답보다는 하면서 즐거운 일을 찾는 것을 추천드립니다.

 

회관에서는 내가 쓴 질의서가 방송에 나오고, 질의서 내용이 반영되어 제도가 변하는 걸 보면서 짜릿해 했지만 기업 대관은 그럴 일은 당연히 없죠. 삶의 중심이 나로 많이 변하고, 관심사도 가족과 함께 보내는 시간들, 여행, 투자 등으로 바뀝니다. 알고 보면 대부분 일반 직장인들이 그렇게 사는데, 저도 첫 직장이 회관이다 보니 그런 걸 몰랐어요.

 

출마를 고민하신다면 기업엔 안 나오실 거고, 기업에서 임원을 다는 것도 쉽지는 않습니다. 저도 채용을 진행해 보니 모든 게 기존 직원들 중심으로 사고를 하거든요. 여러분이 어느 기업을 가시던지 굴러온 돌이 되는 건데, 박힌 돌 빼고 중심이 되시려면 모든 게 많이 피곤하실 겁니다.

 

그렇다고 성공사례들이 없는 건 아닙니다. 대관업무가 점점 중요해지고, 그중 국회의 중요성도 계속 커지기 때문에 부처 담당, 공정업무 담당들과 사내 경쟁으로 우월함을 입증하시면 팀장도 달고, 임원도 되겠죠. 대관도 기업의 사이즈와 업황 등에 따라 사내 입지가 천차만별이니 혹시 나가는 걸 고민하신다면 자기가 하고 싶은 역할과 기업과의 궁합도 잘 확인해 보시길 추천드립니다.

 

 

보좌진에게 하고 싶은 말

 

아무래도 국정감사 시즌이다 보니, 보좌진들의 갑질을 다른 시각에서 많이 접하게 되네요. 저도 회관에 있을 때 일 좀 했었고, 일을 하다 보면 아무리 조심해도 갑질로 비춰질 수 있겠죠. 하지만 똑같은 짓(?)을 해도 그 사람이 어떤 마음가짐으로, 평소에 어떻게 일했는지에 따라 외부 평가는 극렬하게 갈린다는 점을 말씀드리고 싶습니다.

 

회관에서 60세 넘을 때까지 보좌관만 오래오래 하다가, 보좌관에서 사회경력을 마칠 분이라면 신경 쓰지 마시고 마음껏 갑질.. 누리시고요. 내일 일도 예상이 안되는 회관에서, 60세까지 나의 삶을 보장할 능력이 되시는 분이 아니라면 내일 바로 대관 면접을 본다는 마음으로 일하시면 어떨까 싶습니다.

 

"A 의원실 B 비서관이 ~~이랬대"는 여러분이 계시지 않는 수많은 카톡방과 텔레그램을 통해 정말 순식간에 유통됩니다. 바로바로 소문이 안 나더라도 "B 비서관 어때요?"라는 질문 하나로 여러분도 잊고 있던 과거 행적까지 다 평판조회가 된답니다. 최근에도 어떤 기업에 어떤 분이 임원으로 가신다는 소문이 도니, 그분에게 당했던 수없이 많은 분들이 그 기업에 탄원을 넣고, 그분 때문에 증인을 부르겠다는 말도 서슴지 않는 것을 가까이에서 본 적이 있습니다. 우리나라 정말 좁은 곳이지만, 회관만큼 좁은 데도 별로 없다는 점을 항상 경계하면, 일과 인간관계 사이에서 어느 정도의 균형을 맞출 수 있지 않을까 싶네요. 원래 정답이 없다고 스스로 "노답"이 되길 선택하지 않기를 바랍니다.

 


 

🙇‍♂️기꺼이 인터뷰에 응해주신 'OOO' 님께 감사드립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