의원님께 아는척해 보자

‘개딸’에 대한 이해

권리의식 높아진 당원과 함께 정치하는 방법

 

정당에 대한 당원의 영향력이 그 어느 때보다 강한 현재, '당원 주권 시대', '당원 중심 주의'로 통하는 수사는 대한민국 정치의 대부분의 현상을 설명할 수 있을 것입니다. 그만큼 정치인들이 정무적인 판단을 할 때 당원의 생각을 잘 이해하는 것이 필수가 되었는데요.

 

이를 위해서는 '당원 중심의 정당'은 어떻게 시작되었고, 어떤 특징을 가진 당원들이 가입을 하고 구성을 하고 있는지, 그렇다면 앞으로의 정치는 어떻게 해나가야 할지를 알아야 합니다. 그래서 박정환 더민주전국혁신회의 전)사무총장님이 더불어민주당의 상황을 정리해주셨습니다. 이 글을 통해 여러분이 의원님과 대화할 때 정무적 감각을 뽐내실 수 있기를 바랍니다!(곧 이어질 국민의힘 편도 기대해주세요!)

 

✏️필자 소개: 박정환

전) 더민주전국혁신회의 사무총장

전) 김우영 의원실 선임비서관

 


 

높아진 권리의식으로 무장한 당원의 등장

 

주인 노릇을 하는 당원들이 생겨난 것은 최근이 아니다. 민주당 계열의 경우 2002년 개혁국민정당과 2004년 열린우리당 창당 국면이 그 시작이다.

 

2000년대 초반까지 민주당 계열의 정당은 총재 중심의 명망가정당이었다. 당원은 후원자로 존재했다. 2002년 노무현의 등장이 변화의 계기였다. 그를 대통령 후보로 만들었던 국민경선은 총재 중심의 정당을, 지지자 기반·의원 중심의 원내정당과 당원 중심의 대중정당으로 변모시키는 촉매가 되었다.

 

총재가 임명하던 원내총무가 국회의원들이 선출하는 원내대표가 되었고, 당직과 공직후보자 선출 절차에서 당원 참여 비중이 처음 생겼다. 원내정당과 대중정당의 요소가 타협한 채로 유지되었으나 차츰 원내정당 경향이 더 강해졌다. 최근에는 당원 중심 대중정당 경향이 더 강화되어야 한다는 주장이 나오고 있다.

 

다음 계기는 2015년이다. 새정치민주연합이 분열되어 국민의당이 생겨났고, 더불어민주당이 창당했다. 온라인 당원 가입 시스템 도입이 계기가 되었다. 문재인 대표를 지키겠다고 입당이 줄을 이었다.

 

여소야대를 만들었던 20대 총선, 촛불항쟁과 대선승리 등의 계기로 2017년 10월 더불어민주당은 100만 권리당원 시대를 선포한다. 2018년 8월 전당대회에서 선거권이 있는 권리당원 수가 71만 명 남짓인 것으로 보아 발표 시점에서 당권 여부는 고려되지 않은 수치로 보인다.

 

 

개딸의 등장과 그 특성

 

2021년 서울·부산시장 보궐 선거 공천 여부를 묻는 전 당원 투표 당시 약 80만 명, 같은 해 9~10월 사이에 치러진 20대 대선후보 경선에 참여할 수 있었던 권리당원은 72만 명 정도였다. 권리당원 규모는 공직선거, 당의 지지율 등과 연동되어 7~80만 명 정도로 유지되었다.

 

더불어민주당이 안정적으로 110만 명 규모의 권리당원 수를 확보하게 된 계기는 역설적으로 2022년 3월 대통령 선거 패배 이후다. 당시 대략 30만 명의 권리당원이 가입했다고 알려진다. 대통령 선거운동 기간과 지방선거를 계기로 가입한 당원까지 포함하여 2022년 8월 전당대회에 참여할 수 있었던 권리당원은 118만 명이 되었다. 이들이 이재명이란 리더십을 떠받드는 가장 강력한 지지층이 되었다.

 

2022년 3월 직후 가입한 2030 여성 당원들이 스스로 개딸이라고 불렀다. 드라마 응답하라 시리즈에 나온 별난 딸들을 지칭하는 것을 따오기도 했고, 스스로 ‘개혁의 딸’의 줄임말이라고 불렀다. 이게 개아들, 개삼촌, 개이모 등으로 파생되었다.

 

대선에서 낙선한 이재명과 이들이 벌이는 행각(?)을 눈꼴시게 보는 사람들도 있었다. 본인들이 익숙한 아이돌 팬덤 문화나 온라인 커뮤니티 화법으로 정치와 정치인을 바라보고 대하는 경향이 강한 특성이 있다.

 

이들을 12.3 비상계엄 전까지 오프라인에서 본 사람도 거의 없다. 이들은 익명성을 중시해서 얼굴을 잘 드러내지 않는다. 모자와 선글라스, 마스크는 필수다. 주로 X(구. 트위터)나 더쿠, 재명이네 마을 등에서 정보를 공유하고 각자 또는 함께, 일종의 프로젝트팀처럼 활동한다. 달라진 대학과 사회, 직장의 풍경이 이들의 활동에 그대로 투영된다.

 

2024년 12.3 비상계엄 이후 진행된 대규모 집회 참가자들이 아이돌 팬덤을 상징하는 응원봉을 들고 나온 것이 세계적인 화제였다. 이 응원봉 집회 문화의 원조가 바로 개딸들이다.

 

이들은 2022년 연말 당시 이재명 대표와 기존 주류 국회의원들 사이에서 갈등이 불거지자, 더불어민주당 당사 앞에서 노래 <다시 만난 세계>를 틀고 응원봉을 들고 나와서 “민주당은 할 수 있다!”, “힘내라 민주당!”을 구호로 외치는 응원형식의 집회를 했다.

 

2030 여성과 소수자들을 중심으로 <전봉준 투쟁단>의 트랙터 상경을 도왔던 이른바 ‘남태령 대첩’의 주역들도 이들이다. 더쿠와 X(구. 트위터)에서 남태령의 소식이 전해졌고 연대와 참여의 방법이 공유되고 알려졌다. 물론 남태령 현장에는 더불어민주당 당원이 아니거나 이재명의 지지자가 아닌 이들도 많았으나 그들 중에 개딸들이 함께 있었다.

 

더불어민주당 입장에서도 완전히 새로운 특성의 당원들이 유입된 셈이다.

 

 

언론이 개딸로 부르는 사람들

 

두 번째 대규모 입당 계기는 2023년 2월 27일, 이재명 대표 체포동의안 국회 본회의 1차 표결 이후다. 이들은 대다수가 5060 이상이고, 노년층이 다수다.

 

요즘도 종종 ‘문재인 출당’을 요구하는 더불어민주당 당원들이 있는데, 이 시기에 입당한 당원들의 입에서 처음으로 나온 얘기다. 문재인 전 대통령이 윤석열 정권 탄생의 원흉이란 생각이다. 갑자기 불쑥 찾아온 이분들의 발언 덕분에 각종 행사를 주최하면서 진땀을 흘렸던 적이 한두 번이 아니다.

 

이분들은 특정 국회의원 사무소에 방문하여 항의행동을 하거나 행패를 부리기도 한다. 이재명 대표가 단식 농성을 할 때 쪽가위를 들고 국회 경위를 다치게 한 50대 여성과 국회 본청에서 혈서를 쓰겠다고 흉기를 들고 들어온 70대 남성이 가장 극단적인 경우다.

 

언론에선 이들도 ‘개딸’이라 명명하면서, 개딸을 극렬 지지자의 상징으로 만들었다. 엄밀하게 이들은 개딸이 아니다. 언론이 의도적으로 프레임에 가뒀다는 의심이 들 수밖에 없었으나 어쩌면 자세히 취재해 볼 기회나 시간이 주어지지 않았을 것 같다. 같은 해 9월 21일 국회 본회의에서 체포동의안이 가결되고 난 뒤에도 많은 사람들이 입당했다. 이들도 유사한 특성이다.

 

2021년 대선 경선 당시 72만이었던 권리당원이 2024년 총선을 앞두고 130만 명 가까이 되었다. 이들이 기존의 국회의원들을 어떻게 평가했는지는 22대 총선 공천 결과로 드러났으니 굳이 길게 설명할 필요는 없겠다.

 

 

달라진 당원과 함께 정치하는 방법

 

높아진 당원들의 권리의식으로 기존에는 볼 수 없었던 일도 벌어진다. 대표적인 사례가 2024년 총선 이후 있었던 국회의장 후보 추천 과정이었다.

 

온라인 커뮤니티를 중심으로 당원들은 추미애 의원을 국회의장으로 추천하길 요구했다. 정작 국회의원들 투표로 결정된 국회의장 후보는 우원식 의원이었다. 22대 총선에서 처음으로 뽑힌 초선 의원들이 무려 64명인데도 말이다.

 

당시 등장한 개념이 ‘당원주권’이었다. 대한민국의 모든 권력이 국민에게 있는 것처럼 정당도 마찬가지로 당원에게 있다는 것이다. 국가와 정당의 발생 과정과 구성, 운영 방식이 다르기에 단순 비교 대상은 아니지만 직관적인 비유다. 당원의 존재와 지지가 정당의 존립과 운영에 필수적이기에 무시할 수도 없다. 자신들의 의사가 무시되었다는 당원의 분노를 반영하여 권리당원 투표 결과를 국회의장 후보자는 10%, 원내대표는 20% 합산하기로 했다.

 

임시방편이다. 근본적으로 대의제의 위기로 발생한 문제다. 자신의 의사가 제대로 반영되고 있지 못한다는 불만이다. 단순히 직접민주주의적 요소를 일부 반영한다고 해서 해결될 문제는 아니다. 근본적으로 ‘직업으로서의 정치’의 종사자들과 당원 사이의 상호작용이 활성화되어야 한다.

 

좋은 사례들이 있다. 잘 알려지진 않았지만, 2023년 9월 더불어민주당 김용민 국회의원이 경기 남양주시(병)위원회에서 ‘당원총회’를 개최한 일이다. 당원총회의 안건은 ‘윤석열 대통령 탄핵’에 대한 의견을 묻는 것이었다. 대의기구인 지역위원회 상무위원회와 운영위원회를 거쳐서 의결하고, 모든 권리당원에게 연락하여 실제 총회 형식으로 진행했다. 당원총회를 통해서 남양주시(병)위원회는 윤석열 탄핵을 당론으로 결정했고, 지역위원장인 김용민 의원이 의원총회나 촛불집회 등에서 공식화했다.

 

더 좋은 사례들이 있을 것이다. 지역위원회 당원들과 토론하여 하나의 결론을 내린 사례, 동별협의회 회장이나 상설위원회 위원장을 당원의 직접 선출로 더 끈끈한 조직을 구성할 수 있었던 사례 등 다양하리라 생각한다.

 

정치학자 박상훈은 국회미래연구원 보고서 <만들어진 당원 : 우리는 어떻게 1천만 당원을 가진 나라가 되었나>(2023.05.)을 통해 당원의 유형을 크게 ▲당원이 아닌 당원 ▲매집된 당원 ▲지배하려는 당원 세 가지로 구분했다. ‘당원 아닌 당원’은 이름뿐인 당원들이나 자기가 당원인지도 모르는 사람들이고, ‘매집된 당원’은 공직후보로 당내 경선에 나서려는 지인이나 직능단체를 통해 동원되었거나 모집책에 의해서 구매된 사람들이다.

 

주목해야 할 유형은 ‘지배하려는 당원’이다. 특정한 대권 후보나 당대표급 정치인을 위해 입당한 최신 당원들이다. 이들은 주로 온라인을 통해 정당과 국회의원의 정치활동에 관여하고 통제하려고 드는 점을 특성으로 꼽는다. 박상훈 박사는 이들을 팬덤 리더에 따라서 움직이는 수동적인 존재로 묘사했지만, 과연 그럴까. 그들을 직접 만나보면 권리의식이 높고 주체적인 태도를 가진 적극적인 사람들이 다수다. 이들이 자주 하는 말은, “뭐라도 해야 할 것 같아서”다.

 

우리 스스로가 그렇지 않은 사람이듯이 그들도 자기 나름의 정보를 가지고 판단하여 움직인다. 문제는 공유되는 정보가 편향적이거나 왜곡된 경우가 많고, 판단이 단순하고 과격한 경우가 종종 있다는 점이다.

 

일부 사이버 렉카와 같은 유튜브 저널리즘을 탓한다고 해결될 문제가 아니다. 각 지역위원회나 상설위원회 차원에서 정보의 공개, 쟁점의 숙의, 종합적인 결론, 책임 있는 집행의 과정을 조직해 볼 필요가 있다. 그래야 일부 목소리 큰 사람들의 목소리에 좌지우지되지 않는다.

 

박상훈 박사의 지적처럼 유력 정치인에 대한 팬덤은 현상이기에 이를 문제 삼는 것은 의미가 없다. 팬덤 뒤에 숨으려는 정치인이 문제다. 주권자의 집단 의지를 존중하고 상호작용을 통해 조직하고 책임져야 할 정치인이 그 집단 의지를 핑계로 숨는 것이 문제다.

 

어차피 예전처럼 정보와 판단을 독점한 일부 국회의원들에게 모두 맡겨두는 시절로 돌아갈 일은 없다. 달라진 당원들과 어떻게 소통할 것인지, 힘을 모아서 돌파할 것인지, 설득하기 위해서 공개적으로 토론할 것인지 등이 지금 시대에 필요한 리더십의 필수 자질이다.

 


 

좋은 글을 기고해주신 박정환 전)사무총장님께 감사드립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