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5대 대선을 앞두고 김대중과 김종필의 연합으로 한나라당의 이회창을 꺾고 김대중이 대통령으로 당선, 김종필이 국무총리가 되는 공동정부를 구성

 


 

배경

 

  • 1995년 3월 김종필, 민자당에서 탈당하여 자유민주연합(자민련) 창당
  • 1995년 9월 김대중, 대선 패배 후 정계 은퇴에서 복귀하면서 민주당과 별도로 새정치국민회의 창당
  • 1995년 12월 지방선거에서 패한 민자당, 신한국당으로 명칭 변경
  • 1996년 4월11일 15대 총선 결과, 신한국당 선전(139석), 새정치국민회의(78석)/자민련(50석) 부진, 민주당 소수당 전락(15석)

 

 

진행

 

DJP연합

15대 총선에서 패배한 새정치국민회의와 자민련은 다음 해에 있을 대통령 선거에서 통합이 필요하다고 판단. 1년이 넘는 양당의 실무 협의 끝에 1997년 11월 합의문에 서명을 하고 다음날 박태준이 합류

 

합의사항

  • 대통령 후보는 김대중으로 단일화
  • 양당은 공동정부를 구성하고 초대 국무총리는 자민련(김종필)에서 함
  • 1999년 12월 말까지 내각제 개헌하기로
  • 경제부처의 임명권은 국무총리가 가짐
  • 지방선거 수도권 광역단체장 중 한 명을 자민련 소속으로 함

 

김대중은 보수 세력인 자민련과의 연합으로 색깔론 공격을 방어하며 동시에 동진 전략(자민련 충청도/박태준 TK 담당) 추진. 다만, 군부정권 시절 대립하던 사이였고 정치성향도 맞지 않았기에 야합이라는 이유로 여론이 좋지는 않았음. 이후 통추가 합류하면서 20, 30대 개혁세력에 어필

 

이회창/이인제 분열

신한국당은 당내 경선에서 이회창을 대통령 후보로 선출. 이인제는 일반 국민이 참여 불가능한 경선방식에 불만을 제기하고 대선을 두 달 앞둔 시점에 탈당과 대선출마를 선언하며 분열함. 대선을 한 달 앞두고 신한국당이 민주당과 합당하여 한나라당을 출범시켰으나 DJP연합에 비해 임팩트가 낮았음

 

 

결과

 

김대중 40.3%, 이회창 38.7%, 이인제 19.2%

김대중과 김종필의 연합 vs 신한국당의 분열(이회창, 이인제)

새정치국민회의는 15대 대선을 4:4:2(이회창:김대중:이인제) 구도로 인식. 이인제가 사퇴하면 불리하다고 판단하여 이인제가 사퇴하지 않도록 엄호하는 전략을 펼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