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5대 대선을 앞두고 김대중과 김종필의 연합을 통해 대통령은 김대중, 총리는 김종필이 되는 공동정부를 구성

 


 

DJP 연합 합의 사항

 

  • 대통령 후보는 김대중 총재로 단일화
  • 양당은 공동정부를 구성하고 초대 국무총리는 김종필 총재로 함
  • 1999년 12월 말 이전까지 내각제 개헌을 하기로 합의
  • 경제 부처의 임명권은 국무총리가 가짐
  • 지방선거 수도권 광역단체장 중 한 명을 자민련 소속으로 함

 

 

내각 구성

 

대선 이후 합의한 대로 김종필이 총리를 맡고 경제 관료들도 직접 지명. 1기 내각에 총 6명의 자민련 출신 장관 임명. 김대중 정부의 국무총리는 초대 김종필에 이어 박태준, 이한동까지 총 4명 중 3명이 자민련 출신. 집권 3개월 후 치러진 1998년 제2회 지방선거에서도 후보 단일화를 통해 광역단체장 16곳 중 10곳을 석권함

 

 

이후 진행

 

DJP 공동정부는 집권 2년차인 1999년부터 내각제 개헌과 햇볕정책에 대한 의견 차이로 흔들리기 시작함

 

1999년 7월 소위 '워커힐 회동'에서 김대중 대통령과 김종필 총리가 내각제 개헌 유보에 합의함. 이에 자민련 내 반발이 심해지고 새정치국민회의와 자민련은 꾸준히 합당을 추진했으나 완전히 무산됨. 결국 2000년 16대 총선에서는 각자 선거에 나섬. 그 결과 새천년민주당은 어느정도 선전하며 의석을 늘렸지만, 자민련은 기존 50석에서 17석 밖에 확보 못 함

 

DJP 연합의 복원을 원했던 김대중 대통령은 민주당 의원 4명을 자민련으로 보내서 자민련이 다시 원내교섭단체가 될 수 있도록 도와줌. 이에 자민련도 다시 연정에 복귀하기로 하고 자민련에 입당한 이한동 총재가 국무총리가 되어 연정이 복원됨

 

 

최종적인 분열

 

제1야당인 한나라당이 133석을 차지하면서 개헌저지선을 확보했기에 김종필과 자민련의 숙원이었던 내각제 개헌은 끝내 무산되었음. 더불어 햇볕정책에 대해 의견 차를 보이면서 결국 자민련이 2001년 9월 3일 임동원 통일부장관 해임안에 가담, DJP 연합은 종식됨. 자민련으로 넘어갔던 새천년민주당 의원들은 DJP 연합이 끝나자 자민련을 탈당해 새천년민주당으로 복귀하면서 자민련은 다시 원내 비교섭단체가 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