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무현 대통령의 당선 이후 새천년민주당의 쇄신을 요구하며 깊어진 갈등속에 47석의 초미니 여당으로 탄생한 열린우리당은 100년 정당을 표방했지만 창당 약 4년만인 2007년, 대통합민주신당과 합당하면서 역사속으로 사라졌는데요. 짧은 기간에도 불구하고 ‘개혁세력의 국회 과반 획득’이라는 강한 임팩트를 남긴 정당으로 기억되고 있습니다. 오늘 셀럽 뉴스레터에서는 열린우리당 창당 당시의 대한민국 정치 상황에 대해 알아보도록 하겠습니다.

 


 

대통령의 분당

 

노무현 대통령의 당선 이후 새천년민주당에서는 노무현 대통령과 함께 천신정(천정배-신기남-정동영)을 위시한 호남 신주류, 영남, 소장파는 당의 쇄신을 주장하기 시작. 3김 시대가 막을 내림과 동시에 이미 새천년민주당은 보수화되고 낡은 세력이 되었다는 것이었음

 

대선 경선 때부터 계속된 호남 구주류와 친노의 갈등은 대선을 승리로 이끈 이후에도 이어졌음. 재창당 수준의 쇄신을 요구하는 신당파(친노, 호남 신주류, 영남)측의 주장에 대해 동교동계를 중심으로 하는 호남 구주류측구주류는 동교동계가 중심인 세력(한화갑·박상천·김충조·이인제·최재승·김홍일·정균환 등)은 이를 자신들을 배척하기 위한 수작이라고 생각하였음. 양측은 몇차례나 타협을 시도했지만 타협에 이르지 못했음

 

결국 분당 수순에 들어갔지만 정작 생각보다 적은 수인 40명만이 신당에 합류하는 상황이었음. 이에 더해 한나라당에서 개혁을 요구하는 5명의 의원(김부겸, 김영춘, 안영근, 이부영, 이우재, 이른바 독수리 오형제)들이 신당에 합류했고, 개혁국민정당의 김원웅, 유시민도 합당 선언 했음

 

노무현 대통령은 초기에 민주당을 깨서는 안 된다며 신당 창당에 반대 입장을 취했으나, 대부분의 친노 및 개혁파 세력이 탈당을 결심하자 결국 열린우리당에 참여할 뜻을 밝힘. 결국 2003년 11월 11일에 열린우리당은 47석(민주당 탈당파 40석 + 한나라당 탈당파 5석 + 개혁국민정당 2석)의 미니 여당으로 창당함